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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심리학에 대하여

블루올카 2022. 8. 6.

19세기 초에 시작된 게슈탈트 심리학은 그 당시 이론 심리학, 특히 왓슨의 행동주의, 분트의 구성주의와 대조되는 중대한 개념을 제공했다. 그러나 게슈탈트 심리학은 생긴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완전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1910년에 움직임의 지각을 연구한 막스 베르트하이머 Max Wertheimer가 창시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핵심 개념은 마음이 유기적 통일체, 즉 게슈탈트로 정보를 정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은 감각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보를 체계화한다. 뿐만 아니라 지식은 정보의 독립적인 일부가 합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 부분의 역학적 관계를 통해 마음이 전체를 만들어낸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전체론적인 이론이다.

 

1. 게슈탈트 심리학

게슈탈트는 지각과 관련된 전체를 뜻하며 각 부분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런 관계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세상의 지식을 지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테이블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테이블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으며 금속이나 나무로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진한 색이나 밝은 색으로 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납작하고 수평한 면이 한 개 이상의 지지대를 가지고 있으면 그 물체를 테이블로 인식한다. 테이블의 게슈탈트는 각 부분 사이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우리의 감각 기관이 자극을 받아야 지각할 수 있다는 가정에 반박한다. 감각의 자극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이 게슈탈트를 인식할 수 있게 우리의 지각을 적극적으로 체계화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물체나 사람이라도 각기 다른 상황에서는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웃 주민이 살을 빼거나 다른 옷을 입거나 머리를 잘랐다고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을 똑같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분명 각각의 상황에서 우리가 받는 감각적인 정보는 저마다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이웃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2. 게슈탈트 심리학의 선구자, 막스 베르트하이머

막스 베르트하이머가 게슈탈트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다. 달리는 기차 안에 있을 때 움직임을 착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그는 처음으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차 밖의 지형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기차가 달릴 때에는 마치 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경험은 모두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트하이머에게는 이 현상이 마음의 작용을 들여다보는 고유한 창이 되었다. 그가 1910년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그보다 조금 어린 두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와 쿠르트 코프카 Kurt Koffka 가 그의 연구에 동참했다. 그들은 함께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움직임에 대한 착각을 연구했다. 베르트하이머가 파이 현상 Phi effect이라고 이름 붙인 현상을 발견하게 된 연구를 계기로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게슈탈트 연구와 이론에 전념한다. 그러다 1930년대 중반 이 세 사람은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전에 코프카가 먼저 미국으로 떠났고 베르트하이머와 쾰러가 그의 뒤를 따랐다.

 

3. 게슈탈트 이론이 중요한 이유

게슈탈트 이론은 연구 결과보다 심오한 철학적 의미로 인해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근거가 확실한 실험을 통해 그 원리를 입증함으로써 게슈탈트 이론은 이론 심리학에 다시 마음을 부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게슈탈트 이론은 행동주의와 빌헬름 분트의 구성주의에 나타난 연합주의적인 접근법에 상반되는 전체론적인 틀을 제시했다. 연합의는 순전히 단순한 기억들 사이의 연합 과정을 통해서만 복잡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게슈탈트 이론 주의자들은 이런 관점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었다고 치부했다. 복잡한 지식 또한 패턴의 인식과 전체의 확인을 통해 전체적으로 개발된다고 믿었다.

 

심리학이 과학으로 정립해가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물리 과학이 이룬 성과가 대단히 존중받던 시기였다. 그 당시에는 보기 드문 기술적 변화가 일었다. 전화기, 자동차, 영화, 이 모든 것이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그로 인해 사회가 급변했다. 산업화된 세상에 과학이 넘쳐났고 물리 과학에서 이용되는 방법을 통해야만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런 방법들은 주로 분석 기법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인간 심리와 같은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극과 반응의 관계와 같은 작은 부분들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자체가 얼마나 복잡한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작은 부분들이 모인 집단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으로 환원시킬 수 있었다.

 

게슈탈트 이론가들은 이런 환원주의적 가정에 반박했다. 그들은 종합적인 추론에 관심이 있었다. 부분을 어떻게 다시 합칠 수 있을까? 각 부분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전체를 만들 수 있을까? 그들은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4.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말의 의미

이 표현은 게슈탈트 심리학이 만들어낸 가장 유명한 말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과 상관없이 전체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세포와 조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더 작은 단위를 따져보면 우리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원자의 행동을 연구한다고 해서 사랑, 성격, 편견, 음악에 대한 취향 같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세포를 연구하면 그런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부분의 특성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전체만의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슈탈트 이론이 지각에 대한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게슈탈트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은 심리학의 거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었다. 그 영향은 피아제 학설을 지지하는 발달심리학자, 인지심리학자, 심지어 정신분석가에게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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